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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사연

비운의 여주인공 ‘배우 방성자’ 총격사건

by 사건추적 2022. 5. 27.


1940년 5월12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연출을 전공한 아버지 방만재씨와 무용가로 활동하던 어머니 조삼임씨 슬하 5남매 중 맏딸이다. 

두 살 때부터 무용을 배웠으며 연출 대신 사업을 시작한 아버지 때문에 서울로 상경해 남대문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서울이 수복될 때 아버지 방씨는 운수사업을 시작했으나 실패했다. 

방성자는 대구 외갓집으로 내려가 대구사범학교에 진학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이 학교 출신이다. 1958년 대학을 졸업한 방성자는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우연한 자리에서 최훈 감독을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1960년 영화 <애수에 젖은 토요일>에 출연하며 영화계에 입문한다. 이로써 방성자는 최초 여교사 출신 배우이면서 엄앵란 이후 두 번째 학사 출신 여배우다. 

 


 

그녀는 166cm의 늘씬한 몸매와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닮은 아름다운 외모로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던 남미리, 손미희자, 차유미 등과 함께 신인 청춘스타로 기대를 모았다. 영화 <아낌없이 주련다>(1962), <사랑과 미움의 세월>(1962), <못 잊어>(1969) 등 멜로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맡으며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당시 톱배우였던 김지미와 엄앵란의 그늘에 가려 크게 성장하지는 못했다. 이후에도 트로이카 윤정희‧문희‧남정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조연급 배우에 머물렀다. 

<총각원님>(1967), <처녀귀신>(1967), <고향무정>(1968), <형>(1969), <못있어>(1969), <이별의 15열차>(1970), <첫정>(1971) 등 50여 편에 출연했지만 조연에 만족해야만 했다.

 

1963년 제4회 월간 영화세계사 주최 ‘넘버원 인기상’(조연여우상), 1965년 영화잡지사 제정 '한국 최고인기 배우 및 영화상'(조연상)을 수상했다.

 

1972년 7월14일 방성자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에 휘말린다. 

이날 새벽 2시, 서울시 마포구 하수동(현 상수동에 편입) 방성자의 집에 도둑 김호익(35‧절도전과 2범)이 숨어들었다. 그런데 도둑은 누군가가 쏜 총을 맞아 중상을 입고 쓰러진다. 



방성자는 경찰에서 “잠을 자던 중 인기척이 들려 권총(45구경)을 들고 도둑과 마주했고, 한 발을 쐈다”고 진술했다. 총기 출처는 “1945년 영화 ‘전쟁의 다리’를 촬영할 때 영화 소도구 대여업자로부터 미제 45구경 권총을 빌려 반납하지 않은 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경찰은 방씨의 가운에서 짙은 화약흔이 검출됐다는 국과수의 통보에 따라 권총발사는 방씨가 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그러나 방성자의 말을 그대로 믿기에는 의문점이 많았다. 소품으로 사용된 권총은 반납됐고, 당시 사용한 권총은 새것이었으며, 실탄도 5발이나 장전돼 있었다. 

특히 방씨 집에 침입했던 절도범은 “내가 총을 맞을 때 남자 목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영화 소품 관계자도 “방성자에게 총을 빌려준 적이 없다”고 말해 의심을 키웠다. 무엇보다 방성자는 총기를 다룰 줄 몰랐다. 

 

경찰은 재수사에 들어갔고 얼마 후 사건 전모가 드러난다. 도둑에게 권총을 쏜 것은 방성자가 아니라 동거하던 남성이었다. 그는 재벌 2세로 방씨보다 다섯 살 아래인 함기준이었다. 

함씨는 미국 유학을 갔다가 현지에서 결혼해 아내와 두 아들을 둔 유부남이었다. 그는 1970년 병역미필로 귀국한 후 공군에 입대했다. 함씨 아버지가 뇌물을 쓴 덕분에 합참인사기획국장의 숙소 당번병으로 배치받았다.

 

그는 무단으로 근무지를 이탈해 거의 민간에서 생활했으며, 1971년 4월쯤, 아버지 회사의 독일인 기술자의 한국인 부인에게 방성자를 소개받는다. 두 사람은 본격적인 교제를 시작했고 만난 지 3개월 만에 동거에 들어갔다. 



도둑이 자주 들자 방성자는 “소리없는 총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함씨는 형이 숨겨뒀던 권총과 실탄을 몰래 가져다 집에 뒀다. 군 복무 중 논산 제2훈련소(현 육군훈련소) 전속부관으로 근무한 함씨의 형은 전임자에게 술자리를 제공하고 총기대장에 등록되지 않은 문제의 권총을 양도받았다. 

사건 전날인 7월13일 밤 함씨와 방성자는 시내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오후 11시쯤 집에 돌아와 TV를 보다 11시30분쯤 잠자리에 들었다. 함씨는 잠들었으나 평소 불면증이 있던 방씨는 신경안정제를 먹으며 14일 새벽 2시까지 깨어있었다. 

이때 ‘쿵’하는 소리가 들렸고 방성자가 문틈으로 도둑이 든 것을 발견, 함씨를 깨워 함께 내다봤다. 함씨는 방씨의 분홍색 가운을 걸친 후 권총을 꺼내 방문을 열고 도둑에게 1발을 발사했다. 도둑은 오른쪽 복부에 관통상을 입었다. 

총상을 확인한 후 방씨는 함씨에게 “당신은 모르는 걸로 하자.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지고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인근 서강파출소에 가서 “내가 쐈다”고 허위 진술했다.

 

함씨는 사건 직후 한남동 자택으로 도피한 후 은신처를 옮겨다니다가 경찰에 검거됐다. 방씨는 기자들이 ‘왜 함씨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냐’고 묻자 "그를 죽도록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재판에 넘겨진 방성자는 범인도피죄와 총포화약류 단속법위반죄를 적용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군법회의에 회부된 함기준 상병은 군무이탈죄 등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절도범 김호익은 상습야간주거침입 절도 미수죄를 적용해 징역 1년 실형이 선고됐다.




사건 이후 방성자는 연예계를 떠났다가 1989년 문여송 감독의 <잡초들의 봄>에 출연한 것이 마지막 행적이다. 이후 술집 마담설, 사망설 등이 있었지만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며, 현재는 생사가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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