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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사연

'삼청교육대' 끌려갔다 후유증으로 사망한 코미디언 이기동

by 사건추적 2022. 8. 16.


1935년 6월8일 북한에서 태어난 실향민이며, 본명은 ‘이헌’이다.

코미디언 최초 육군 장교 출신이다. 

1960년대 중반 군에서 전역한 이기동은 당시 최고의 코미디언이었던 구봉서를 만나면서 극장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당시 인기를 끌던 유명 코미디언들은 대부분 유랑극단 출신이었지만 이기동은 근본부터 달랐다. 군 장교들은 마음만 먹으면 좋은 자리 하나 꿰찰 수 있었는데도 그는 연예계를 선택했다. 

군 시절부터 상당한 ‘끼’가 있었다고 알려졌다. 

 

이기동은 무대에 선 후 작고 통통한 체격 때문에 ‘땅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주로 MBC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활동했다. 

초기에는 미녀 코미디언 권귀옥과 함께 ‘땅딸이 이기동과 늘씬 미녀 미스권’으로 안방극장을 주름잡았다. 



이어 미남 코미디언인 이대성과 콤비로 활약했고, 그후 배삼룡과 ‘땅딸이 이기동, 비실이 배삼룡’을 슬로건으로 콤비를 이루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비쩍 마른 몸매의 배삼룡과 키가 작고 뚱뚱한 몸매의 이기동은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대중들을 웃겼다. 사실 배삼룡은 이기동보다 9살이나 많은 대선배였다. 

 

이기동은 특유의 눈알을 빙빙 돌리다 뒤로 자빠지는 연기나 경례할 때 손을 용수철 튀기듯 네다 섯번 정도 위아래로 반동을 주는 연기로 재미를 더했다. 

수많은 유행어를 탄생시켰는데 대표적인 것이 '쿵다라 닥닥 삐약삐약‘ ’닭다리 잡고 뜯어 뜯어', '안녕이노모하시므레이까' 등이 있다.  

이기동은 영화로 활동영역을 넓혀 <마음 약해서>(1980), <남자가정부>(1980) 등에 출연했다. 노래에도 소질이 있어 1974년에는 ‘망각’, ‘사랑의 눈동자’, ‘빗속의 추억’ 등이 실린 앨범을 내고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기동은 머리가 좋았고 재치도 있었으며 대단한 노력파였다. 전혀 다른 배경을 갖고도 발붙이기 쉽지 않은 연예계에서 성공을 거둔 이면에는 이런 것들이 작용했다.

 

이기동은 또 동료들 사이에서 ‘짠돌이’로 통할 정도로 검소했다.

1970년대 후반 배삼룡과 이기동은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빙과류 사업에 뛰어든다. 



배삼룡은 ‘삼룡사와’ 이기동은 ‘땅딸사와’라는 브랜드로 사업을 시작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두 사람 모두 제대로 운영도 못해보고 사업체가 도산하면서 그야말로 폭망했다. 

 

이기동은 검찰에 의해 사기혐의로 구속된다. 유산균 음료를 출하한다고 대리점계약을 맺었으나 3개월이 지나도 제품이 나오지 않자 대리점 업주들이 손해를 입었다며 고소했던 것이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들어서자 두 사람은 ‘저질 코미디언’으로 찍혀 연예인 정화대상에 오른다. 방송 출연 정지를 당하면서 생계도 끊겼다. 

설상가상 감방에 있던 이기동은 한국판 아우슈비츠 수용소라고 불릴 정도로 악명 높았던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는다. 

이기동은 1981년에 석방된 후 정신적인 굴욕감과 울분을 참지 못하고 매일 술로 지새웠다. 이로인해 날로 건강이 악화됐고 결국 간 질환을 앓게 된다. 

그러던 1987년 3월28일 새벽 밤무대 공연을 마치고 귀가한 후 갑자기 쓰러졌다. 급히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4월1일 사망했다. 사인은 간경화와 당뇨 합병증이었다. 향년 52세.

1993년 8월 한 언론매체는 배삼룡의 증언을 인용해 이기동이 삼청교육대에서 고초를 겪은 후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기동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이유는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경제인’이었다. 하지만 배삼룡은 이것은 허울 좋은 핑계에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그에 따르면 자신과 이기동은 당시 ‘3김’ 중의 한 사람인 김종필(JP)과 가까이 지내면서 그의 열렬한 지지자였다고 한다. 

 

배씨는 3김이 정치규제에 묶이자 그 불똥이 자신들에게도 튀었다고 했다. ‘유명 연예인도 이렇게 잡혀가는데, 일반인인 너희들도 말 듣지 않으면 잡혀갈 수 있다’는 협박용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전두환 정권의 삼청교육대가 이기동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주장이다. 



코미디언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땅딸이 이기동. 그는 암울한 시대에 대중에게 웃음을 선사했지만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린 비운의 코미디언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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