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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사람들

베트남전 참상 알린 ‘네이팜탄 소녀'의 숨은 사연

by 사건추적 2020. 12. 25.


베트남은 통일 과정에서 미국과 전쟁(1960~1975)을 벌였다.

 

미군은 북베트남의 도시와 농촌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3천도의 고열을 내뿜으며 30미터 이내를 불바다로 만드는 네이팜탄을 쏟아 부었다.

 

네이팜탄을 가득 실은 미국의 B-29 폭격기들은 다낭과 같은 베트남 중부의 도시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화엄에 휩싸인 도시에서 올라온 살을 타는 냄새가 폐부를 찔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네이팜탄이 사람에 노출되면 타죽거나 질식해서 숨지게 된다.

 

또 베트콩들이 숨을 곳을 없애고 식량 보급을 막기 위해서 고엽제(식물의 잎을 말려 죽이는 약품)를 무차별 살포했다.

 

당시 미국 AP통신 사진기자였던 닉 우트는 1972년 6월8일 사이공(현 호찌민) 서쪽 짬방 마을을 취재하다 네이팜탄 폭격의 참상을 목격하게 된다. 

 

미군은 마을 사람들이 피신해 있던 한 사원에 네이팜탄을 떨어뜨렸고, 아이들이 울면서 뛰어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때 9세였던 킴푹(Kim Phuc)은 네이팜탄으로 인해 불길이 옷에 옮겨 붙자 옷을 벗어버리고 절규하면서 뛰어갔고, 이 사진은 훗날 ‘네이팜탄 소녀’로 불렸다. 이 사진은 전 세계에 베트남전의 참혹함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닉 우트는 이 사진으로 이듬해 퓰리처상(베트남―전쟁의 테러)을 수상했다.

 

킴푹은 우트의 도움으로 곧장 병원에 가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수 십 차례 피부이식 수술을 견뎌야 했다. 1992년 캐나다로 망명했고 2년 뒤 유네스코 친선대사로 임명됐다.

 

1997년 ‘낌 푹 재단’을 설립해 전쟁 피해 아동을 위한 구호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99년 한국을 찾아 “네이팜탄 세례를 퍼부은 비극의 당사자를 용서하되 잊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2월11일 킴푹(55)은 독일 드레스덴 인권평화상을 받았다. 

 

전쟁 중에 다친 아이들을 지원하고 폭력과 혐오에 반기를 들었고, 유네스코를 지지하는 등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다. 

 

그가 받은 1만유로(약 1천270만원)의 상금은 전쟁고아 등을 지원하는 그의 재단에 기부된다. 드레스덴 평화상은 지난 2010년 제정되었으며 첫 수상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다.

 

한편, 베트남전은 엄청난 희생자를 냈다.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사망자 47만 명, 월남 정부군 희생자 13만 명, 미군 희생자 27만 명이 나왔다. 한국은 베트남전쟁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다.



1964년 9월 의료진을 중심으로 한 비전투요원을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맹호부대와 청룡부대, 백마부대 등 30만 명이 넘는 전투병력을 베트남에 파병했다. 

 

그 과정에서 1만6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또 많은 참전 군인들이 고엽제 피해 등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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