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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사람들

실종자 600명 찾은 '왕초 각설이' 나주봉 회장

by 사건추적 2022. 7. 4.


지난 1991년 6월 인천 월미도.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월미도에 마련된 무대 위에서 거지 분장을 한 세 명의 각설이패가 한창 공연을 하고 있었다.

각설이의 왕초는 나주봉씨였다. 그날 각설이 공연을 보기 위해 약 200여명의 관객들이 모여 있었다. 한바탕 신나게 놀던 각설이들이 잠시 쉬고 있을 때 무대 한쪽에서 전단지를 배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개구리 소년들의 아버지였다. 슬픈 표정의 아버지들은 “우리 아들을 꼭 찾게 해달라”며 간곡히 호소했다.

 

나씨는 개구리 소년 가족들에게 다가가 “도와드릴테니 전단지를 달라”고 해서 500장을 얻어 배포했다. 이것이 그의 운명을 뒤바꾼 계기가 됐다. 나씨는 자신의 사비를 들여 전단지 2만장을 추가로 제작해 돌렸다.

그는 1.5t 트럭에 소년들의 사진을 붙이고 전국을 헤맸다. 트럭이 폐차된 뒤에는 군밤을 파는 손수레에 사진을 붙이고 다녔다.

 

‘털보 각설이’라고 불리던 나씨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장타령을 하면서 전단지를 나눠줬다. 



그는 물건 파는 것 보다 아이들을 찾는 일에 더 매달렸다. ‘어린이 실종’이 있을 때는 누구보다 먼저 찾아갔다. 1991년 1월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이형호군(9)이 유괴된다.

 

이군은 사건 발생 44일 후인 그해 3월13일에 잠실대교에서 서쪽으로 약 1.5 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배수로(일명 '토끼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군 유괴범을 공개 수배하기도 했다. 나 씨는 TV방송을 본 후 강남경찰서로 달려가 범인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일명 그놈 목소리)를 입수한다. 자비로 테이프를 제작해 전국을 다니면서 배포했다.

 

4년 동안 3천600여만원을 들여 테이프 6만개를 만들었고, 범인을 잡기위해 직접 나섰다. 경찰은 그에게 ‘각설이 탐정’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범인이 잡히지 않아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개구리소년도 실종 약 11년만인 1991년 3월에 유골이 발견되면서 나씨의 피나는 노력도 허무하게 됐다.  

나주봉씨는 그 뒤 서울 청량리역 인근에 실종된 소년들의 사진으로 도배한 조그만 컨테이너 박스를 사무실로 삼아 지금의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전미찾모)를 만들었다. 그는 단체의 회장을 맡았다. 

 

개구리소년 추모제 때 나주봉 회장(오른쪽)과 필자가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된 곳에 술을 부어주고 있다(영남일보).

그동안 나 회장이 자비로 만들어 뿌린 전단지가 100만장에 달하고, 그가 찾은 실종자가 600명이 넘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에는 '제13회 서울시민대상' 을 수상했다. 매년 개구리소년들이 실종된 날에는 대구 달서구 와룡산에서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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