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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사연

이리역 폭발사고 때 '하춘화 목숨 살린' 코미디언 이주일

by 사건추적 2022. 7. 6.


1977년 11월11일 밤 8시쯤, 이리역(현 익산역)에 임시화물열차(제1605호)가 들어왔다. 여기에는 다이너마이트와 전기뇌관 등 40t의 고성능 폭발물이 가득 실려 있었다. 

밤 9시15분쯤, 화물열차의 다이너마이트 화차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곧이어 대낮 같은 섬광이 비추더니 버섯구름을 몰고 치솟았다. 마치 원폭투하를 방불케 했다.

폭발은 시내를 덮쳤고 창인동, 송학동, 남중동, 모현동, 중앙동 등 이리역 직경 16km 이내의 집과 건물이 완전파괴됐다. 폭발과 함께 시내는 정전이 돼 온 시가지가 암흑에 휩싸였다. 

 

여기저기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등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이리역에서 동북쪽으로 약 200m쯤에는 삼남극장이 있었다. 이날 오후 9시부터 극장에서는 '하춘화 쇼'가 열리고 있었다. 1‧2층 객석에는 700여명의 관객이 몰려 만원을 이뤘다.  

약 15분 후 갑자기 폭음소리가 두 번 나더니 극장이 크게 흔들렸고, 지붕과 2층 관람석이 통째로 내려앉았다. 유리창이 모두 깨져 눈발같이 뿌려졌고, 극장문과 창문은 5~6m씩 날아가 뒹굴었다. 

극장 안은 삽시간에 아수라판이 됐다. 코를 찌르는 화약내음과 눈을 뜰 수 없는 매캐한 연기, 불꽃, 관객들은 극장을 빠져나가려고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무너진 슬레이트나 벽돌더미에 짓눌려 헤어나오지 못했다. 

극장앞에는 역에서 날아온 열차 바퀴가 나뒹굴었고 옆 상가 철재 셔터가 강풍에 넘어졌다. 극장 주변에 서 있던 소형승용차 2대는 창유리가 모두 깨지고 옆으로 넘어졌고, 인근 3-4층 빌딩이 무너져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이번 공연의 주인공인 하춘화는 어떻게 됐을까. 

하춘화는 무대에 올라 10여분 정도 히트곡을 부른 뒤 2부 공연을 위해 분장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때 폭발로 인해 내려앉은 천장이 그녀의 오른쪽 어깨를 강타했고, 하춘화는 피투성이가 된 채 그 자리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이때 누군가 하춘화를 등에 업고 필사적인 탈출을 시도했다. 그의 머리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춘화를 살리는 데 열중했다.

 

 

그는 칠흙 같은 어둠속에다 무너진 잔해로 뒤범벅이 된 극장 안을 헤집고 밖으로 빠져나오는데 성공한다. 하춘화는 어깨뼈와 오른손 등을 다쳐 전치 7주의 중상을 입었다. 

 

위기의 순간에 하춘화를 구한 것은 훗날 '코미디 황제'로 불린 정주일이었다. 당시 정주일의 부상은 더 심각했다. 그는 천정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아 머리가 함몰됐고 수술과 4개월간의 치료 끝에 간신히 기사회생했다. 

정주일과 하춘화의 인연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70년대 하춘화는 전성기를 누린 가수였지만 정주일은 유랑극단을 전전하던 무명 배우였다. 

이런 그가 하춘화와 우연히 인연이 닿은 후 1974년부터 전국순회공연 사회자를 맡았다. 당시는 극장쇼가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무명MC 정주일은 정상급 가수인 하춘화 쇼의 단골 진행자로 나서면서 차츰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평소 정주일은 자신을 챙겨준 하춘화를 마음속 깊이 존경했다. 그러다 위기가 닥치자 자신보다 하춘화를 살리는데 발 벗고 나섰던 것이다. 이후 하춘화도 정주일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고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결국 정주일은 뜨는 데 성공했고, 2주일 만에 스타가 됐다고 해서 이름도 ‘이주일’로 바꿨다. 이후 그는 코미디 황제로 등극했으며 국회의원까지 역임하며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하춘화보다 더 유명 인물이 됐지만 그 밑바탕에는 하춘화와의 깊은 인연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1995년 9월9일 이주일과 하춘화는 18년 만의 합동무대를 가졌다. 사고 이후 처음으로 함께 무대에 선 것이다. 이날 <KBS 빅쇼>에서는 ‘코미디와 가요의 만남’을 주제로 전성기 극장쇼를 재연했다. 

 

이주일은 과거 트레이드 마크였던 '수지큐'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불효자는 웁니다' 등의 노래를 불렀고, 하춘화는 '강강수월래' '달아달아' 등의 민요와 '불새 한마리' '날 버린 남자' 등 히트곡, '고향무정' '고향만리' 등 고향 노래를 들려줬다.

 

이주일은 2001년 11월17일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후 금연 운동 캠페인을 전개했으나 2002년 8월27일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춘화는 공연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8년에는 <마산항엔 비가 내린다>를 발표했다. 



한편, 폭발사고 당시 삼남극장 ‘하춘화 쇼’에 출연했던 가수 박인숙은 사고로 인해 평생 불구가 됐다며 한국화약을 상대로 손해배상 및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소송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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