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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공포

‘탑승자 전원 사망’ 저주받은 나치 군함 샤른호르스트호

by 사건추적 2022. 7. 28.


제1차 세계대전 후 나치 독일은 해군 증강 계획의 일환으로 4만t급 순양전함(전함과 함께 주력함에 속하는 전투함) 건조를 추진한다.

 

1930년 6월30일 빌헬름스하펜 해군 조선소에서 기공했으나 건조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나치는 짧은 시간에 군함 건조를 강행하면서 인부들을 혹사시켰다. 그러면서 크고 작은 사고를 야기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배의 공정이 70% 정도 진행됐을 때는 갑자기 균형을 잃고 쓰러지며 61명이 죽고 110명이 다쳤다. 배가 기울어진 원인은 찾을 수 없었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만 꼬박 석 달이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배는 약 6년 만에 완성됐다. 나치의 과학자들이 총동원돼 건조한 만큼 최첨단 레이더 등 전자장비가 탑재됐고, 최신예 장거리포가 장착됐다.

 

영국의 어떤 전함보다 빠른 속력까지 갖추는 등 독일 최고의 전함이라고 불릴 만 했다. ‘백색의 전함’이라고 할 만큼 우아함과 아름다움까지 가진 나치 해군의 자랑거리였다. 




나치는 나폴레옹 점령 당시 독립전쟁을 이끈 프로이센 장군의 이름을 따 ‘샤른호르스트호’라고 명명했다. 1914년 포클랜드 섬 전투에서 침몰된 SMS 샤른호르스트를 기념한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수식을 전후해 불길한 징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독일 해군은 1936년 10월3일 진수식을 앞두고 히틀러를 비롯해 하인리히 히물러, 헤르만 괴링 등 나치 수뇌부들을 초청했다.

 

그런데 진수식 날 샤른호르스트호가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전날 밤 진수식 때 끊어야 할 고정 장치가 풀어져 제멋대로 움직이더니 두 척의 부선(艀船)을 들이받고 승무원들까지 깔아뭉갰다. 이로 인해 50여명의 인명피해가 생겼다.

 

당황한 나치 수뇌부는 이런 사실을 숨긴 채 “비밀병기라 밤에 진수식을 했다”고 둘러댔다. 대신 선전용 사진과 영상만을 촬영했다.

 

이상한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함장 내정자가 갑자기 심장 발작을 일으켜 사망했고, 진수식 날 축사에 나섰던 14세 소녀가 내용이 모호한 유서를 남겨놓고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 유서에는 “나는 반해버렸습니다”, “지켜주세요” 같은 두서없는 글이 적혀있었다.

 



이렇듯 불길한 일이 끊이지 않자 사람들은 ‘저주 받은 배’라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건조 과정에서 죽은 수많은 인부들의 원혼이 저주를 내렸다며 이를 ‘샤른호르스트호의 저주’라고 불렀다.

 

첫번째 임무로 폴란드를 점령하라는 작전 명령이 하달되자 단치히를 향해 출항했다. 샤른호르스트호는 이동 중 자매함과의 자체 포술대회에서 첫 주포발사를 하게 되는데 이 시험 사격에서 포문이 폭발해 9명의 사망한다.

 

다른 포탑에서는 환기장치가 고장 나 12명이 질식사했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면서 희생자가 속출했다. 실전에 나서기도 전에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면서 배에 탄 사람들이 죽어나갔던 것이다.

 

1943년 12월26일 샤른호르스트는 소련으로 가는 연합군 호송선단을 공격하기 위해 구축함들과 노르웨이 북쪽 해상으로 출항했다. 하지만 영국군 함대에 들켜 집중 포격을 받고 프로펠라가 돌아가는 상태에서 침몰했다.

 

승조원들(장교 60명 포함 1천968명)은 얼음처럼 차가운 바다에 빠져 죽거나 허우적거렸다. 영국 함장은 서치라이트를 꺼버렸고 겨우 36명만 살아남았다.

 

이들 또한 추운 바다 위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끝까지 살아남은 것은 2명뿐이었다. 이들마저도 구명보트의 오일 히터가 폭발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렇게해서 샤른호르스트호의 승조원 중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후 샤른호르스트호는 ‘저주받은 군함’으로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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