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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사연

돌연사한 '한번만 더' 부른 가수 박성신

by 사건추적 2022. 3. 11.


1968년 11월22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산 너머 남촌에는>을 부른 가수 박재란의 딸이다. 

서울예술전문대학 방송연예과에 졸업했고, 1학년 때인 1987년 제11회 대학가요제에서 <회상>을 불러 입상했다. 

1988년 제9회 MBC 강변가요제에서 <비오는 오후>라는 곡으로 가창상과 장려상을 받으며 가요계에 정식 데뷔했다. 1990년에 발표한 <한번만 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풍부한 감성의 가사와 감각적인 멜로디는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켰고 박성신은 같은해 대한민국 영상 음반대상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수상했다.

 

박성신은 데뷔 초기 왕년의 인기가수 딸이라는 것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그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번만 더' 곡을 받을 때부터 왠지 히트할 것 같았다”며 “빠른 템포의 노래이면서도 록과 삼바의 분위기가 깔려 있고 가사도 절제된 슬픔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성신은 이듬해인 1991년 경쾌한 스윙풍의 2집 <크림 하나 설탕 하나>를 발표했으나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당시 매니저 없이 혼자 활동하던 그녀는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3집 음반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던 1993년 임인성 목사를 만나 결혼하면서 가수 활동을 중단했다. 박성신은 이때부터 목회활동에 전념했다.

 

박성신의 '한번만 더'는 핑클과 마야, 나얼, 이승기 등 많은 후배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 2006년 이승기가 리메이크해 가요계를 휩쓸자 그 해 연말 SBS 가요대전에 이승기와 합동 무대를 가지며 깜짝 등장했다. 

 

박성신은 대중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2009년부터 대학 강단과 실용음악학원에서 제자를 가르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2012년부터 가요계 복귀를 위해 실력있는 작곡가들로부터 곡을 모으고, 몇 곡은 본인이 직접 곡 작업에 참여하며 3집 앨범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를 기획했다.

그러던 2014년 8월8일 오후 12시쯤 박성신은 돌연 숨진 채 발견된다.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사망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향년 45세. 고인은 발인을 거쳐 충북 진천에 안치됐다. 

 

남편 임인성 목사는 "가난한 목사의 아내로 방송을 하지 않고 지냈다"며 "오빠 동생으로 만났는데 처음부터 사랑했고, 지금도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 밖에 해줄 게 없다. 목사일 때문에 못해준 게 너무 많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1주기인 2015년 8월13일에는 추모 앨범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가 발매됐다. 박성신은 생전 가요계 복귀를 염두에 두고 총 12곡으로 기획된 3집 앨범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인해 5곡만 부분완성을 하고, 나머지는 미완성 상태였다. 



이에 따라 부분완성된 5곡은 믹싱과 편집을 통해 완성했고, 고인이 부르려고 했던 미완성된 곡은 그의 제자들이 한 곡씩 불러 앨범을 완성했다. 첫 번째 곡인 ‘조금만 더’(손경민 작사·작곡)는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난 고인의 어려웠던 인생사가 담겨 있다.

 

2021년 4월29일 MBN 예능프로그램 <현장로포 특종세상>을 통해 박성신의 가정사가 공개되기도 했다. 이날 제작진은 "딸의 무덤을 찾고있다"는 제보를 받고 충북 진천의 한 야산을 찾았다.

 

당시 고인의 어머니 박재란(82)은 “사정이 있어 딸 무덤을 8년째 찾고 있다”며 목놓아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박재란은 딸이 어디에 묻혔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녀는 “사위와 좀 껄끄러운 면이 있었다. 사연은 이야기할 수 없다. 일가친척까지 사이가 안 좋았다. 큰딸 내외는 손자, 손녀까지 전부 중국에 이민을 갔다. 그래서 급하니까 연락할 여건이 안됐다. 나만 (장례식장에) 갔다. (가족 중에는) 아무도 안 왔다. 딸이 사망한 것이 안 믿겨져 기절을 계속 했다”며 눈물 섞인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당시 박재란은 장례식에 참석했지만 딸의 영정사진을 보자 큰 충격에 정신조차 가누질 못했다고 한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장례 절차가 끝난 뒤였다.

박재란은 “그때 제가 심장이 나빠서 심장 수술도 받았고 위도 수술 받았고 몇 달 동안 엄청 아팠다”고 말했다.

 

이어 “조금 회복돼서 (사위에게) 연락을 하니까 연락이 안 됐다”며 “기절했다 깼다를 계속 반복했었다. 그런 와중에도 어렴풋이 제 기억으로 (딸의 장지가) 충북 진천이라는 것이 들렸던 것 같다. 그 단서 하나 가지고 지금 찾으러 다니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박재란은 첫 결혼해 실패한 뒤 도망치듯 미국으로 가 재혼을 했지만 또 다시 실패를 맛봤고 두 딸을 한국에 남겨둬야 했다고 밝혔다.

 

박재란은 "꼭 딸을 찾아서 죽은 영혼에라도 못 해줬던 것을 사과하고 싶다"며 "엄마로서 못해줬던 부분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싶다. 죽은 영혼이라도 찾으면 최선을 다해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재란은 한 달 뒤 시청자들의 제보를 통해 8년 만에 딸의 무덤을 찾고 오열했다. 한 시청자는 "저희 아이가 박성신씨에게 보컬 레슨을 받았다. 선생님이 저희 시댁 과수원 옆에 묻히셨다"고 알려줬다. 

 



한편, 박재란은 KBS 4기 전속가수에 합격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대표곡인 '산 너머 남촌에는'을 비롯해 '코스모스 사랑' '밀짚모자 목장 아가씨' 등을 히트시키며 톱가수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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