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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세상

캄보디아 밀림에서 발견된 유령 도시

by 사건추적 2021. 10. 17.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다.

 

국토의 70%가 울창한 삼림으로 뒤덮여 있고, 전 국민의 96%가 불교를 믿는다.

 

1863년 프랑스 보호국이 된 이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가 됐다. 1940년에는 일본에 점령됐고, 일본 패전 후인 1947년 5월 프랑스연합 내의 한 왕국으로 독립했다가 1953년에야 완전한 독립을 이뤘다.

 

그 후 심각한 내전으로 혼란을 겪었다.

 

불교국가인 캄보디아는 사원을 중심으로 문화 활동과 교육이 이뤄지고 승려들은 사회에서 존경받는 계층으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캄보디아 중앙에는 길이 160km, 너비 36km인 동남아에서 가장 큰 담수호 ‘톤레삽 호수’가 있다. 호수 북쪽의 밀림지역은 ‘천혜의 보고’라고 할 만큼 광활한 삼림과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

 

지난 1860년 프랑스 생물학자 ‘앙리 무오’가 이곳을 찾았다.

 

그는 미지의 아시아 대륙을 걸어서 탐험하는 용기있는 젊은 탐험가였다. 2년 전 캄보디아를 방문해 우수한 연구성과를 올린 그가 두 번째로 다시 찾은 것이다. 

 

그는 자신을 도와줄 현지인들과 함께 탐사를 시작했는데 며칠 후 그를 돕던 현지인들이 갑자기 탐사를 중단했다. 이유는 이곳이 밤이면 끔찍한 유령들이 나타나는 ‘유령도시’라며 겁에 질려했다.

 

이들에 따르면 이곳에는 수 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아주 오랜 시절 사람들은 머리가 일곱인 뱀신을 모셨고, 한 왕족이 밀림 속에 거대한 도시를 건설했다. 그런데 왕족들이 반역을 도모하며 신을 부정하자 이에 노한 신은 이들에게 저주를 내렸다. 도시는 수풀로 뒤덮여 완전히 사라졌고, 유령이 된 사람들은 밀림 속을 헤매게 됐다는 것이다.

 

이후 이 숲속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유령도시에서 실제로 머리가 여럿인 뱀을 본 사람과 유령을 봤다는 목격담이 늘어났다. 기괴한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숨을 거두기도 했다.

 

1850년에는 이곳에서 길을 잃을 프랑스의 뷰오 신부가 뒤늦게 발견됐는데, “검은 유령도시를 봤다”는 등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밤마다 유령도시가 나타나고 뱀신에게 홀려 정신을 잃을 수 있다며 아무도 이곳에 들어가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믿지 않은 앙리는 끈질기게 현지인들을 설득해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그날 밤, 현지인들이 혼비백산하며 달아나면서 앙리는 홀로 남게 된다. 그는 빽빽한 밀림을 뚫고 드디어 유령도시에 도달했다. 앙리는 그곳에서 머물며 문서와 스케치를 작성했다.

 

그 후 무사히 마을로 내려온 앙리는 프랑스로 돌아간다. 그때부터 그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자기가 탐사했던 곳에 거대한 도시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유령에 홀린 것이라며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앙리는 라오스 나판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35세의 나이에 사망한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가 유령도시의 저주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믿게 됐다. 

 

5년 후인 1966년, 프랑스 해군장교 루이 들라포르트는 우연히 한 도서관에서 앙리가 쓴 책 <캄보디아 탐험>을 보게 된다. 앙리의 책에는 유령도시에 대해 "하늘의 청색, 정글의 초록색, 건축물의 장엄함과 우아한 곡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고 감탄했다.

 

이 책은 앙리 사후에 그의 부인과 동생이 그가 남긴 캄보디아 숲속의 유령도시를 목격한 것에 대해 그림과 글을 모아 쓴 것이었다.

 

루이는 문명이 손길이 닿지 않은 오지 속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 있다는 것에 강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의 지원 아래 탐사대를 조직해 캄보디아로 떠났다. 얼마 후 루이는 그곳에서 거대한 도시를 발견한다.

 

앙리가 말한 ‘유령도시’의 실체가 드러난 순간이다.

 



루이는 좀 더 높은 곳에 올라갔고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곳에는 수백개에 달하는 우뚝 솟은 탑들과 어마어마한 건물, 층층이 쌓인 계단들이 있는 거대한 도시가 있었던 것이다.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앙코르와트’다. 9세기에서 15세기까지 이곳을 지배했던 크메르 제국의 수도인 '앙코르'와 불교 사원을 뜻하는 '와트'가 합쳐진 이름이다.

 

당시 크메르족은 왕과 유명한 왕족이 죽으면 그가 믿던 신과 합체한다는 신앙을 갖고 있었다.

 

왕은 자기와 합체하게 될 신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유적은 앙코르왕조의 전성기를 이룬 수리아바르만 2세가 37년에 걸쳐 건설한 사원이다.

 

바깥벽은 동서로 1500m 남북으로 1300m의 직사각형으로 웅장한 규모이며 정면은 서쪽을 향한다. 7톤짜리 기둥 1800개와 돌로 만든 방이 260여개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당시 크메르족은 현대의 건축가들도 믿기 어려울 정도의 완벽한 건축기술을 선보였다.

 

이에 세계의 건축 전문가들도 12세기에 작은 아시아에서 어떻게 이런 건축물이 만들어졌고, 그동안 감쪽같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지 의문을 자아냈고, 이후 앙코르와트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게 됐다.

 

발견 후 한동안 사람들의 접근을 통제했다가 1993년부터 일반에 공개했다. 현재는 하루에 약 1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됐다.




한편, 앙코르와트 최초 발견자에 대해서는 다른 이견도 있다. 앙리 무오가 자세한 기록으로 남긴 것은 사실이지만 16세기 이후 서방의 탐험가와 수도사들이 앙코르와트에 무오 보다 5년 정도 빨리 방문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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