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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확인물체

미확인비행물체(UFO) 'LA 대공습' 사건

by 사건추적 2022. 7. 13.


1942년 2월25일 새벽 미국 로스엔젤레스(LA) 상공에 정체불명의 미확인비행물체(UFO)가 나타났다.

 

LA에 주둔 중인 미 육군 레이더망에 15대가 포착됐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약 18분 후 비행체들이 다시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이번에는 엄청난 크기의 비행체가 약 1만2천 피트 상공에 정지된 상태로 떠 있었다. LA 도심 전역은 공습경보가 발령됐고, 육군의 대공포는 일제히 비행물체를 조준했다.

 

새벽 3시16분 발사 신호가 떨어지자 대공포가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다.

 

실제 사진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비행접시는 필자가 합성했다.


 

약 1천400여발이 비행체를 향해 집중 발사됐다. 4시14분까지 약 1시간 동안 발사가 이뤄졌으나 비행물체는 여기에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다.

 

군 당국은 비행체들이 사라져 모두 격추됐다고 판단했고, 오전 7시21분에 비상경보를 해제했다.

 

대공포탄 유탄이 지상에 추락하면서 LA도심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돼 있었다. 이런 가운데 군 당국은 격추된 비행체들의 잔해 수거에 나섰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LA 도심 어디에서도 비행체들이 격추된 흔적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시 미군이 운용한 대공포.

대신 대공포로 인해 민간인 사상자만 발생했다. 공식적인 사망자가 5명이 나오면서 군 당국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미합중국 해군장관 프랭크 녹스와 육군 항공대 사령관 헨리 아놀드 장군은 “경보가 잘못 울린 것이었으며, 전쟁 공포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군 당국의 어설픈 해명에 시민들의 의구심만 커졌다. 당시 목격자들도 미확인 비행물체가 9기에서 25기정도로 여러 대였다고 증언했다.

 

육군참모총장 조지C 마셜 장군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초기 보고에서 "미확인 비행기들이 매우 느린 속도부터 시속 321km에 이르는 다양한 속도로 움직였다"고 밝힌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군 당국의 사건 은폐를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시민들의 비난이 가라앉지 않자 마셜 장군은 결국 “LA 상공에 15개의 비행체가 나타났었고, 이것에 조준 사격했었다”라고 밝혔다. ‘미확인 비행물체’에 대한 공격을 공식 인정한 것이다.

 

당시 사건 내용을 보도한 LA타임즈 기사.

이어 전쟁부장관인 헨리 스팀슨의 지시아래 진상조사를 벌여 “비행체가 나타난 것은 사실”이라고 재차 확인했지만 그것의 정체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당시 군 당국의 발표는 의문만 남긴 채 종결됐다. 

 

그러다 1975년 놀라운 주장이 제기됐다.

 

세계적인 UFO 사진분석 전문가인 브루스 매카비는 당시 비행물체가 ‘UFO’라고 언급했다. 현장에서 찍힌 사진을 인화한 결과 비행형태 접시의 UFO였다는 것이다. 이에 반박해 브루스 매카비가 제시한 사진이 합성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LA 공습과 같은 사건이 1965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1991년 영국 런던에서도 있었다.

 

1976년 10월14일 국내에서도 LA와 아주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서울 상공에 12개의 불빛이 일정한 속도로 반원형의 대열을 갖춰 서서히 이동하면서 청와대 상공까지 진입했다.

 

해당 물체는 낮은 속도로 저고도 비행중이었고, 이런 모습은 수많은 서울 시민들에게도 목격됐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라디오 방송에서는 청취자들의 제보를 받고 실시간으로 상황을 전파하기도 했다.

 

수도경비사령부(현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방공포 부대가 대공포를 30분 넘게 집중 공격했으나 단 한발도 명중시키지 못했다. 반면 대공포 잔해로 인해 1명이 사망하고 32명이 부상당했다.




지난 2011년 개봉된 SF영화 <월드 인베이젼>은 ‘LA UFO 대공습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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