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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연현상

네델란드 불사신 ‘미린다요’ 사망사건

by 사건추적 2022. 5. 23.


아놀드 헹스켄즈는 1912년 네델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청년이 되자 디자인 회사에 입사했다.

 

헹스켄즈는 어느 날 밤부터 꿈에서 죽은 사람들을 보기 시작했다. 조카, 큰어머니, 친구, 회사 동료들이 나타났다. 그는 잠에서 깨자마자 꿈에서 본 큰 어머니를 스케치했다.

 

가족들은 이걸 보고 깜짝 놀랐다. 헹스켄즈는 큰어머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33세가 되던 해 헹스켄즈에게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방바닥에 떨어진 압정을 밟았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발바닥에서는 피도 나오지 않았다. 얼마 뒤에는 회사 동료들과 운동을 하다 철근에 찔렸다. 이번에도 피가 나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헹스켄즈는 상처를 입어도 고통스럽지 않고, 죽은 자들이 꿈에 계속 나타나는 현실이 혼란스러웠다. 생각이 많아지면서 회사도 그만뒀다. 가족과 대화를 단절하고 단신으로 암스테르담으로 옮겨 가 살았다.




홀로 떨어진 헹스켄즈는 일자리를 구하러 거리로 나섰다가 극장을 목격했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극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순간 무릎을 쳤다. 이왕 이상한 몸을 갖게 됐다면, 이를 이용해 돈을 버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이후 헹스겐즈는 차력사로 변신해 자신의 몸에 칼, 파이프 등을 관통시키는 쇼를 펼치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능력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했다. 몸에 무기나 흉기로 관통상을 입고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고통을 느끼거나 죽지도 않았다. 깨진 유리조각과 바늘, 면도날 등을 잔뜩 삼키고도 멀쩡했다. 뜨거운 다리미나 끊는 물에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난생 처음 신기한 광경을 본 사람들은 그의 쇼를 보기 위해 모여 들었다. 그에게는 ‘기적의 사나이’라는 별칭이 붙었고, 국제 공용언어인 에스페란토어로 ‘놀라움’이라는 뜻의 ‘미린다요’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는 쇼를 업그레이드했다. 날카로운 것을 삼키는 것에 그칠 게 아니라 아예 몸에 찔러 넣기로 했다. 관객은 한층 과격한 쇼에 흥분했다.

 

사람들은 미린다요의 쇼에 열광했다. 그는 늘 상반신을 탈의하고 무대에 등장했다. 정적에 휩싸인 무대 위에서 그는 조수가 찔러 넣는 칼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칼은 그의 가슴은 물론 옆구리, 등을 차례로 관통했다. 사람들은 눈을 질끈 감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미린다요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무려 80cm가 넘는 칼이 꽂혔는데도 그는 아픈 기색이 전혀 없었다.




펜싱 칼과 날카로운 꼬챙이를 몸 이곳저곳에 찔러 넣는 그의 무대는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실제로 무대 위 그를 지켜보다 졸도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무대는 늘 인기였다. 그를 보기 위해 독일, 프랑스, 미국, 영국 등 각지에서 관객이 몰려들었다. 극장은 큰돈을 벌었고 미린다요는 정치가나 배우를 뛰어 넘는 사랑을 받았다.

 

급기야 사람들은 그를 ‘제2의 메시야’로 떠받들었다. 일부에서는 그를 추앙하는 사이비 종교까지 생겼다. 미린다요는 인간이 아니라 신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

 

부자들은 그를 파티에 초대하려 했지만 미린다요는 거절했다. 사람들은 신비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여겼지만 미린다요는 단지 사교적이지 않았기에 파티에 참석하고 싶지 않았다.

 

관객들과 달리 과학자들은 미란다요를 의심했다. 특히 의사들은 미린다요가 사기꾼이라고 입을 모았다. 스위스의 한 의사는 1947년 5월31일 다요를 취리히의 병원으로 초청했다. 그의 거짓말을 만천하에 알리려는 속셈이었다.

 

미린다요는 초청에 응했다. 의사의 동료들과 의대생들은 미린다요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상의를 벗은 그는 동행한 조수가 뒤에서 칼을 꽂아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칼은 미린다요의 심장과 폐, 신장을 차례로 관통했다. 다요는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당황한 의사는 칼을 몸에 꽂은 다요에게 X선 사진을 촬영하고자 제안했다. 다요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가 장비를 옮기려고 하자 미린다요는 손을 가볍게 내저은 뒤 스스로 X선 장비까지 걸어갔다. 이윽고 의사들은 칼이 세 개나 박힌 다요의 X선 사진을 받아들었다. 장기를 꿰뚫은 칼이 선명하게 찍힌 X선 사진을 보고 의사들은 경악했다.

 



당시 상황은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았다. 이에 따르면 미린다요는 무대 위와 마찬가지로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고 이따금씩 의대생들을 둘러보며 미소를 지었다.

 

의사들은 진귀한 사내의 몸을 가능한 자세하게 훑어봤다. 칼이 빠져나간 미린다요의 몸에는 작은 구멍이 남았을 뿐이다. 거기에서는 피 대신 일종의 체액이 약간 묻어있을 뿐이었다.

 

1947년 6월23일 미국 타임지는 미린다요의 인터뷰 기사를 싣고 그를 ‘미러클 맨(Miracle Man)’이라고 소개했다.

 

불사신으로 시대를 풍미한 미린다요 역시 죽음은 피하지 못했다. 영원히 살 것 같았던 미린다요는 1948년 눈을 감았다. 그의 죽음은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미스터리로 가득했다.

 

미린다요는 죽기 얼마 전부터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1948년 5월11일 미린다요는 스위스 자택에서 또 목소리를 들었다. 다요는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공연을 하는 도중 처음 찾아왔다고 했다. 그들은 오직 다요에게만 보였고 목소리 역시 다요만 들을 수 있었다. 불사의 능력 역시 그들이 줬다고 굳게 믿었다.

 

미린다요는 자신에게 능력을 준 이들이 목숨 역시 거둬갈 것이라고 믿었다. 어느 날 그들은 미린다요에게 의사들이 보는 앞에서 쇠못을 먹으라고 명했다. 또한 마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몸에서 쇠못을 다시 꺼내라고 말했다.

 

미린다요는 망설임 없이 쇠못을 먹었고, 의사들은 그의 몸속에 있던 쇠못을 제거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다요의 말을 듣지 않고 마취를 했다. 이후 다요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불사의 능력이 점차 빠져나가는 듯 불안에 휩싸였다. 다요의 조수는 그런 그가 염려됐다.

 

조수는 못을 빼낸 열흘 뒤 스위스 자택에서 요양 중인 미린다요를 찾아갔다. 침대에 엎드린 다요는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호흡은 일정했다. 미린다요는 다음날에도 같은 자세로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이전부터 다요는 특이한 자세로 명상에 잠기곤 했기에 조수는 별 걱정 없이 집을 나왔다.

 

하지만 사흘째 되던 날 다요는 죽은 채 발견됐다. 그의 집을 찾은 조수가 손목을 짚었지만 맥박이 없고 얼음처럼 차가웠다. 미린다요가 세상을 떠난 것은 1948년 5월26일 아침이었다. 그의 나이 36세였다.

 

사실 미린다요는 의사들이 몸에서 못을 꺼낸 뒤부터 죽음을 암시하는 말을 했다. 마취를 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겼기 때문에 조만간 능력과 목숨을 가져갈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조수에게도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일렀다.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쏴도 죽지 않았던 불사신이 왜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 그의 사망원인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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