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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사람들

'기생 명월이'와 '백백교 교주'의 상주가 된 사연

by 사건추적 2021. 11. 10.


2010년은 우리나라 역사상 뜻 깊은 한 해다.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이면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그해 1월, 필자는 서울 종로에서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기생 명월이의 생식기와 백백교 교주의 머리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는 그 이야기로 한참동안 대화를 이어갔다. 

 

백백교 교주 화장 후 유골함을 들고 있는 필자(왼쪽), 명월이 천도재 때는 위패를 들었다.

다음날 나는 곧바로 확인 취재에 들어갔고, 얼마 후 <시사저널>에 '국과수에 웬 70년 전 죄인의 머리가...'라는 단독기사를 내보냈다.

 

일제 강점기 때 사이비종교 단체인 백백교 교주의 잘린 머리와 명월관 기생의 생식기가 포르말린 용액에 담긴 채 수십 년 동안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지하 부검실에 보관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가 나오자 혜문 대표는 '여성의 생식기 표본을 폐기하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백백교'와 '명월이'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으며, 언론매체들마다 앞다퉈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이에 국과수는 장례 등 적절한 절차를 거쳐 인체 표본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는 단순히 기사를 쓰고 소송하는데 끝나지 않았다. 

 

생식기의 주인이 정확히 누구인지를 밝혀야 했고, 그녀의 원혼을 천도하는 재(齋)를 지내주어야 했다. 혜문대표와 필자는 오랜 탐문 끝에 일본 하기시 마츠모토 시립미술관에 그녀로 추정되는 그림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일본 마츠모토 시립미술관 특별관람실에서 명월이의 실체를 찾아냈다.

같은해 4월8일, 그림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갔다. 막연하게 '명월관 기생', '기생 명월이'의 것으로 불리며 국과수 지하실에 잠자고 있던 생식기의 주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마침내 마츠모토 시립미술관 특별관람실에서 그녀의 진짜 이름인 '홍련'을 찾아냈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일본인 화가 이시이 하쿠테이였다. 

 

우리나라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이중섭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1918년과 1921년 두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 각지를 돌며 인물화를 주로 그렸고, 그와 명월관 기생 홍련이와 사랑에 빠졌다는 일화는 지금까지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다. 

 

1918년은 그가 우리나라에서 활동할 시기였으며 당시 그는 36세였고, 그때 우리나라의 최고 기생집이 명월관이었다. 1920년에 개업한 명월관은 1918년 화재로 소실되기까지 고관대작들이 자주 드나들던 곳이었다.

 

법원은 나중에 명월이의 생식기를 파기하라고 판결했고, 국과수는 6월14일 서울고등검찰청의 지휘를 받아 용역업체에 의뢰해 여성 생식기를 폐기했다. 기사가 나온지 약 5개월 만이다. 

 

8월24일, 경기도 남양주 봉선사에서는 수십 년간 구천을 떠돌던 한 많은 여인 '기생 명월이' 홍련의 천도재를 지냈다. 혜문대표는 내게 "정 기자님이 명월이의 존재를 밝혀 기사를 쓰셨으니 상주를 맡아야 한다"고 했다. 


필자는 상주가 되어 그녀의 위패를 들었고, 일본에서 찾아온 그림을 영정으로 사용했다. 이렇게 생식기를 적출당한 채 구천을 떠돌던 한많은 여인의 원혼은 편안한 안식처를 찾을 수 있었다. 

 

생식기를 적출당한 후 70년간 구천을 떠돌던 기생 명월이의 천도재.

그리고 다음해 10월25일, 서울 시립승화원(벽제화장장)에서는 백백교의 교주 전용해의 머리가 화장되었다. 필자는 는 이날도 백백교 교주의 상주 자격으로 참석했다. 

 

전용해는 1927년부터 1937년까지 10여년 동안 전국을 공포에 떨게 한 인물로, 이 기간 동안 무려 620여 명에 이르는 신도들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백백교 사건'은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런 전용해의 상주를 필자가 맡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런 것을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으리라.

 

백백교 교주 전용해의 머리가 화장중이라는 것을 알리는 화면.
전용해의 화장된 유골을 인수하는 혜문대표.
인수한 유골을 옮기는 혜문대표와 필자.

전용해의 머리 유골은 혜문 대표가 당시 주지로 있던 포천 흥룡사에 묻혀 있다. 

 

전용해 머리 유골이 묻혀 있는 흥룡사 부도밭.

혜문 대표는 역사의 아픈 상처를 치료하고 진실을 밝히는데 앞장섰고, 지금도 역사바로세우기에 누구보다 열성적이다.

 

필자는 혜문 대표와 여러 일들을 함께 했는데 그중 하나가 기생 명월이와 백백교 교주 사건이다. 혜문 대표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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