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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유럽을 떠도는 저주 받은 유령 열차

by 사건추적 2021. 12. 31.


지난 1911년부터 러시아와 동유럽에는 ‘유령 열차’가 자주 목격됐다.

 

대부분의 유령 열차는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그냥 통과했다.

 

이 유령열차는 달랐다. 철로가 없는 지점에 불쑥 나타나거나, 앞에 선 사람들을 치어 죽게 했다. 열차에 탄 사람들이 행방불명되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공포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이 열차를 ‘예즈드-프리즈락’(Poyezd-Prizrak, 러시아어 ‘유령 열차’)이라고 불렀다.

 

유령 열차는 언제부터 왜 유럽을 떠도는 것일까. 1998년 9월25일 러시아의 유력 일간지 <로시스카야 가제타>가 유령 열차를 심층취재하면서 베일을 벗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유령 열차는 러시아의 대문호 ‘니콜라이 고골리의 저주로 시작됐다고 한다.

 

고골리는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이며,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적 스승이다. 그는 1809년 우크라이나의 소로친치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문학을 좋아했고, 추악한 현실세계를 증오하는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많이 썼다.




특히 인간의 모든 악을 풍자적으로 그린 <죽은 혼>에 집착했다. 제1부를 집필하는 동안에 악(惡)만을 들추어내는 자신의 재능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고, 차차 종교적·신비적 정신상태에 빠지게 된다.

 

도덕적인 인간과 악덕에서 갱생하는 인간을 그려보려고 <죽은 혼> 2부를 집필하기 시작했으나 성공하지 못해 원고를 불태워 버렸다.

 

마지막에는 반미치광이로 살다가 1852년 3월 43세로 최후를 맞았다. 보통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치료를 거부하다가 죽었다고 알려졌으나 ‘자살설’ ‘생매장설’ 등이 끊이지 않았다. 그의 시신은 모스크바 세인트 다니엘 사원 공동묘지에 묻혔다.

 

고골리가 죽은 지 59년 후인 1911년 초, 그가 묻힌 공동묘지가 철거될 상황에 놓이게 됐다. 묘지 이장을 위해 군인들이 그의 관을 열었더니 관 벽에 손가락으로 심하게 할 퀸 자국이 있었다. ‘생매장설’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군인들은 고골리의 시신을 보고 또 한 번 기겁하고 말았다. 관 속 시신은 몸통만 있고 머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조사결과 2년 전인 1909년 묘지 관리인이 유품수집가에게 고골리의 해골을 팔아넘긴 것이었다.

 

1911년 7월 고골리의 친척인 해군 장교 ‘야노프스키’가 해골을 찾아 나섰다. 그는 유통경로를 추적해 유품수집가를 찾아냈고, 그를 협박해 나무상자에 든 해골을 되찾았다. 야노프스키는 자신이 복무하던 지중해 인근 지역으로 가져갔다가 재매장을 위해 모스크바로 해골을 보내기로 한다.

 

그는 모스크바로 가던 이탈리아 장교에게 유골을 담은 상자를 건네며 전달을 부탁했다. 이 장교는 모스크바로 향하던 이탈리아의 관광열차 '나는 이탈리아인(Mying Italian)’에 올랐다. 당시 열차에는 승객 100명과 승무원 6명이 타고 있었다.

 

열차를 타고 가던 이탈리아 장교와 그 일행은 갑자기 장난 끼가 발동했다. 열차가 캄캄한 터널을 지날 때쯤 한손엔 램프를 들고 다른 한 손엔 해골을 들고 승객들을 놀래 켰다. 이들의 뜻대로 승객들은 비명을 지르며 숨기에 바빴다.

 

그런데 승객들이 본 것은 해골이 아니었다.

 

유골함에서 해골을 꺼내는 순간 한 남자가 나타났고, 그의 목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험악한 표정으로 승객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때 열차가 멈춰 섰고, 장교와 또 다른 한 명은 본능적으로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터널 안에 있던 열차도 한 순간에 승객들을 태운 채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열차는 시‧공간을 초월하며 실종 당시의 모습 그대로 러시아와 동유럽 지역에 유령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로 늦은 밤에 출몰했다. 창문은 모두 커튼에 막혀 안이 보이지 않고 자욱한 안개 속에 싸여 있었다. 열차는 선로가 없는 곳에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유령 열차에 관심을 가진 과학자들도 나타났다.

 

이중 보리스 타라카노프 박사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조사 도중 흥미로운 편지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1941년 멕시코 칸쿤 인근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서 유령 열차의 소유주인 이탈리아 밀라노의 철도회사에 보낸 것이었다. 여기에는 사라진 승객들의 행적에 대한 단서가 들어있었다.

 

이 편지에는 로마에서 기차로 왔다고 주장한 104명의 환자들이 일주일 동안 병원에서 치료받고 퇴원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들의 복장 또한 당시의 것과 달랐다고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열차는 사라진 지 30년 만에 수 천 km 떨어진 멕시코에 나타난 것이 된다. 이 열차가 어떻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보리스 박사는 멕시코를 찾아가 해당 병원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려고 했으나 이미 폐업된 후여서 자료도, 사람도 찾을 수가 없었다.

 

1995년 7월14일 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레이더 기지 책임자로 근무하던 안톤 그나트약 준위가 유령 열차를 목격했다. 그는 15일 새벽 기차를 타기 위해 키예프역으로 향했다. 그는 역무원의 양해를 얻어 퇴역한 기차에서 하룻밤 잠을 청하기로 했다.

 

안톤 준위는 버려진 열차들 사이로 걸어가다가 한 곳에 멈춰 섰다. 다른 기차들에 비해 오래돼 보이지만 깨끗하고 편안할 것 같은 기차를 보고 이곳에서 잠을 자려고 했다.

 

열차의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는데 그 순간 강한 전류에 감전되며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더 놀라운 것은 멈춰 있던 열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6년 후인 2001년 7월14일 중앙아시아 남단에 위치한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철로를 검사하던 역장이 기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목격자들은 역장이 기차에 치여 죽은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들은 “무척 오래돼 보이는 기차가 비어 있는 철로에 갑자기 나타나 역장 쪽으로 접근했고, 이때 역장이 알 수 없는 힘에 밀려 뒤로 날아가 넘어지면서 숨졌다”고 말했다.

 

유령 열차는 그 뒤에도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강진으로 인해 강력한 전자기장이 발생해 시공을 초월한 것으로 본다는 가설을 제기했으나 신빙성은 떨어지고 있다.




또 어떤 과학자들은 ‘초과학적인 현상’이라고 했으나 정확하게 어떤 현상인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이 유령 열차의 모든 것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국내의 방송매체에서도 여러 차례 ‘유령 열차’를 소개했다. 2007년 7월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와 2019년 1월 KBS Joy <차트를 달리는 남자>에서 ‘원인불명 미스터리’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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