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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죽음의 미로로 만들어진 '스탈린의 비밀 별장'

by 사건추적 2022. 1. 1.


구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1879.12.18-1953.3.5)은 공포 정치로 유명하다.

 

‘스탈린’은 ‘강철 인간’이라는 뜻의 필명으로 레닌이 지어줬다. 그는 집권기간인 1922년에서 1953까지 약 30년간 권력을 누리며 정적과 반대파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탄압하며 악명을 떨쳤다.

 

1934년 측근인 세르게이 키로프의 암살을 계기로 공산당 내 ‘불순분자’에 대한 피의 숙청을 시작했다. 1938년 말까지 4년 동안 숙청된 사람만 1200만 명이며 처형된 사람은 약 100만명에 달했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저항할 여지가 있는 이들은 고위 간부, 군 장교, 인민 등을 가리지 않고 처형했다. 친한 친구나 동지는 물론 자신의 처자식도 믿지 않았다.

 

학살의 중심에는 스탈린의 비밀경찰이나 다름없는 내무인민위원회(NKVD)가 있었다. KGB의 전신인 이 위원회는 전 국민을 감시하고, 수사하고, 처형했다. 그 수장인 라브렌티 베리야는 ‘독사’라고 불릴 정도로 잔혹했다.

 

그러다보니 스탈린은 항상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그는 암살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했다. 자신과 외모가 비슷한 사람을 뽑아 말투까지 따라하게 교육시킨 뒤 공개 석상에 대신 내보냈다. 음식이 나오면 부하에게 먼저 먹게 했다.




그러던 스탈린은 초능력자 울프 메싱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유대계 폴란드인인 그는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다는 초능력으로 유명하다. 스탈린은 울프 메싱을 크렘린 궁으로 불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크렘린 경비대장에게 누구도 궁 안에 들여놓지 말 것을 명령했다. 울프  메싱이 궁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으라고 지시한 것이다.

 

여기에는 스탈린의 의도가 깔려 있었다. 스탈린은 울프 메싱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하는 동시에 크렘린 궁이 얼마나 안전한 곳인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울프 메싱은 삼엄한 경비를 뚫고 궁 안으로 여유있게 들어왔다. 초능력을 사용해 경비병들에게 자신이 스탈린이라는 것을 인식시킨 뒤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크렘린 궁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스탈린은 여기에 충격을 받았다. 삼엄한 경비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강한 초능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스탈린은 크렘린 궁도 안전하지 않다고 보고 자신만의 요새를 짓기로 한다.

 

그는 극비리에 일을 추진했다. 공사 감독에게 은밀히 지시를 내려 “최대한 찾기 어려운 곳에 최대한 복잡하게 지어야 한다”고 명령했다. 그는 위치 선정부터 설계, 건축까지 모든 건설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이렇게 해서 크렘린 궁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스탈린의 비밀 별장이 완성됐다.

 

이곳은 모스크바 서쪽 외곽에 있는 울창한 산림지대로 해발 50m에 위치해 있다.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우거진 50만m2(15만1250평) 숲속 한 가운데에 있는 고풍스런 대저택이다.

 

하지만 이 저택은 위치부터 구조까지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다. 저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꽈배기 모양의 도로를 통과해야 하는데 도로의 굴곡이 너무 심해서 시속 40km 이상의 속도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꽈배기 도로를 통과하고 나면 이번에는 복잡한 미로 형식의 길을 만나게 된다. 저택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지만 곳곳에 다른 길로 연결되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한 번 잘못 들면 엉뚱한 곳으로 가기 쉽기 때문에 이 길은 ‘죽음의 미로’라고 불린다.

 

설령 이 길을 통과해 저택까지 도착한다고 해도 안으로 들어가기가 어렵다. 저택 내부는 매우 복잡하게 설계돼 있고, 그 안에는 똑같은 4개의 비밀스런 방이 있다.

 

4개의 방은 통로를 통해 하나로 이어지게 했다. 언제든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놓은 것이다.

 

스탈린은 혹시 모를 침입자를 봉쇄하기 위해 꽈배기 도로와 미로 형식의 숲길을 조성하고 별장 내부를 복잡하게 설계했다. 비밀 별장은 스탈린 스스로가 만든 최고의 안전지대였던 셈이다.

 

하지만 비밀별장은 스탈린에게 매우 위험한 곳이었다.

 

1953년 2월28일 스탈린은 측근들과 함께 크렘린 궁에서 영화를 감상했다. 그 뒤 자신의 별장으로 옮겨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먹고 마시며 연회를 즐졌다. 이후 스탈린은 별장 안으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었는데, 오후가 될 때까지 하루 종일 아무런 기척도 하지 않았다.

 

매일 오전 10시에 경호원들에게 하루 일과를 보고 받던 스탈린이었는데 그날 따라 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오후가 되자 비밀 경찰국장 베리야가 중요 보고를 위해 스탈린을 찾았다가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베리야는 스탈린이 있는 곳을 찾지 못해 한참 헤매다가 신음소리를 듣고 발견했는데,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상태였다.

 

그는 서둘러 의사를 불렀다. 하지만 의사는 구불구불한 길과 미로 같은 숲속길을 통과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했다. 결국 치료시기를 놓친 스탈린은 4일 후인 1953년 3월5일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평생 아무도 믿지 못하고 후계자도 키우지 않았던 독재자의 쓸쓸한 죽음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 74세, 공식 사인은 ‘뇌출혈’이다.




스탈린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스탈린의 신임을 잃어가던 베리야(위 사진)가 꾸민 음모라는 설이 있다.

 

당시 외교를 담당하던 뱌체슬라프 몰로토프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베리야가 자신이 스탈린을 독살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베리야는 스탈린 사후 권력투쟁에서 밀려 심복들과 함께 처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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