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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진실

유영철 과잉보호 경찰 ‘피해자 엄마 발길질 사건’

by 사건추적 2022. 1. 2.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출장마사지 여성과 부유층 노인 등 20명을 살해했다.

 

자기가 직접 제작한 해머나 칼 등을 이용해 잔인하게 범행에 나섰다.

 

그는 도피 행각을 벌이다 경찰에 체포됐다경찰은 연쇄살인범을 잡고도 허술하게 관리해 놓치는 촌극을 벌였다그러다 2004년 718일 다시 경찰에 체포된다.

 

경찰이 유영철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한다.

 

유영철을 보호하려다 피해자의 엄마를 이단 옆차기로 발길질을 하면서 전 국민의 분노를 샀다유영철을 잡았다 놓치면서 국민의 지탄 받았던 경찰결국 그 분풀이를 피해자 유족에게 한 꼴이 됐다.

 

2014년 726일 오전 750분쯤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는 영등포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던 유영철을 검찰로 호송채비를 했다.

 

유씨는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경찰서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심경을 말해달라는 취재진의 질문공세에 입을 굳게 다물었고약 10초 정도 카메라 기자들의 촬영에 응했다.

 

유씨가 경찰 현관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경찰 저지선 밖에 서 있던 동대문구 이문동 살인사건의 피해 여성의 어머니 정아무개씨(51)가 경찰 저지선을 뚫고 유씨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이문동 엄마야경찰 너희가 빨리 잡았으면 안 죽었잖아라고 유씨와 경찰을 함께 비난하고 울부짖으며 들고 있던 우산으로 유씨를 때리려 했다.

 



그때 현관 계단 위에서 유씨를 둘러싸고 있던 사복경찰 가운데 한명인 이아무개 경사(45)가 정씨의 가슴팍을 발로 차는 바람에 ’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피해자의 유족으로 보이는 또 다른 30대 남성도 유씨에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어경찰이 이를 뜯어 말리는 과정에 몸싸움이 심하게 벌어지기도 했다.

 

유영철은 경찰서 현관에서 호송차량까지 10m 정도를 떼밀리 듯 이동급히 24인용 호송차량에 올랐다유씨를 태운 호송용 버스는 앞뒤로 기수대 소속 승합차 2대의 호위를 받으며 경찰서를 황급히 빠져 나갔다.

 

피해자 유족을 발길질한 경찰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다그러자 경찰은 달려오는 유가족을 발을 사용해 제지하려 했던 것이지 폭행을 행사한 것은 아니다고고 해명했다.

 

당시 유영철은 수십 명의 무술 경관들이 에워싸고 있었다그런데도 양산을 들고 있는 유족을 제지하기 위해 이단 옆차기를 했는데이것은 제지가 아니라 엄연한 폭행이었다.

 

경찰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호송 경찰관의 발길질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죄인을 보호한다고 피해자 어머니의 가슴을 발길로 걷어차는 경찰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 네티즌은 경찰이 피해자 가족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져주지는 못할망정 발길질을 하는 것을 보니 내 가슴이 아플 지경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폭행 당사자인 기동수사대 이아무개 경사를 청량리경찰서로 전출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3일 후인 729일 당시 최기문 경찰청장은 경찰이 피해자 유족에게 발길질을 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유영철을 제때 잡지 못해 피해를 사전에 막지 못했다며 사과를 한지 열흘 만에 다시 사과를 한 것이다.

 

최 청장은 호송하던 경찰이 유족을 발로 차는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해 국민을 놀라게 하고 유족들에게 또다시 아픔을 준데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발길질 사건이 일어난 후 우리 경찰의 수사관행과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백바지와 백구두를 신은 경찰, 그가 보호해야 할 사람이 살인마 유영철인지, 아니면 피해자의 엄마였는지 헷갈린다.

 

그의 발길질은 잔혹한 범죄에 분노하는 국민의 가슴을 발로 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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