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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사연

7명에게 새 생명 주고 떠난 ‘비운의 탤런트’ 석광렬

by 사건추적 2022. 7. 7.


1968년 9월2일 서울에서 석가화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988년 CF모델로 데뷔한 후 의류브랜드 '옴파로스’ 메인 모델로 활동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특히 1993년에 찍은 광고는 그를 일약 CF 스타로 만들었다. 초원과 해변이 어우러진 절벽 근처에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여있고, 잘 생긴 남자가 우수에 젖은 모습으로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

 

이때 부른 노랫말 “바람이고 싶어~ 강물이고 싶어~ 그대 기억 속에 그리움으로 남고 싶어~ 0000”는 유행어처럼 퍼져나갔다.

 

이 광고로 석광렬은 소녀 팬들의 마음을 한 순간에 사로잡았고, CF모델에서 배우가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1993년 KBS드라마 <금요일의 여인>에 캐스팅 되면서 배우로 입문한다. 이듬해인 1994년에는 KBS 2TV 주말극 <남자는 외로워>의 주연으로 전격 발탁됐다.

 

그해 KBS <한쪽 눈을 감아요>, <남자는 외로워>에 출연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장수 프로그램 중 하나인 KBS <TV는 사랑을 싣고>(94년 5월3일)의 첫 출연자이기도 하다. 추억 속의 주인공 또는 평소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던 주인공을 찾아 만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한창 잘 나갈 때 그의 날개가 ‘뚝’하고 부러진다.

 

1994년 7월25일 새벽 <남자는 외로워> 야간촬영을 마친 석광렬은 기아 스포티지를 운전해 집으로 가고 있었다. 잠실 올림픽 대로를 지나가다 그만 한강 교각을 들이받고 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한다.

 

크게 다친 석광렬은 잠실중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의식불명에 빠졌다. 사고 6일째인 31일에는 뇌사 판정을 받기에 이른다.

 

하나 뿐인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 석가화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하지만 그는 슬픔 속에만 머물지 않았다. 아들이 평소 했던 “내가 죽는다면 꼭 장기기증을 하고 싶다”는 말을 떠올리고 그 뜻을 지켜주기로 결심한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광렬이 영혼은 부모 곁에 있을 겁니다. 광렬이 시신은 여러분들한테 힘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8월1일 이른 아침부터 수술이 시작됐다. 의료진은 심장, 간, 취장, 신장2개, 안구2개를 적출했다. 이어 불치병 환자들에게 이식 수술이 곧바로 이뤄졌다.

 

수술은 곧 아버지에게 아들을 떠나보내는 고통의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의식은 없지만 영혼은 살아있었을 석광렬은 그 값진 희생으로 고통을 달랬다.

 

석광렬은 모두 7명에게 새 생명을 주고 27세에 하늘의 별이 됐다. 한창 촉망받던 연기자 석광렬은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남았다.

 

그는 장기기증 대한 사회적 인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후에 많은 연예인들이 장기기증에 서약했다.




그해 열린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서 석광렬은 특별상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대신한 수상 소감에서 “광렬이를 오래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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