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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진실23

22살 어린 내연남 '양아들 삼은 후' 동거하다 살해한 여성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에 살던 윤아무개씨(여‧64)는 1995년 남편과 이혼했다. 윤씨는 친아들 박아무개씨(38)와 며느리 이아무개씨(35)와 함께 살았다. 윤씨는 공시지가로 40억원대의 5층짜리 상가건물을 보유하고 매달 900여만원의 임대수익을 받는 재력가였다. 그는 교도소 재소자들을 교화하는 종교활동에도 참여했다. 그러던 2002년 윤씨는 안양의 한 골프장에서 채아무개씨(42)를 처음 만난다. 채씨는 조직폭력배 출신으로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고, 출소 이후에는 용인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었다. 윤씨는 이런 채씨에게 호의를 베푼다. 채씨도 재력가인 윤씨에게 호감을 갖으면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졌다. 어느새 연인사이로 발전하면서 안양 윤씨 집에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윤씨는 어린 남자와 산다는 이웃의 .. 2022. 6. 24.
음란물 중독 살인마 오원춘 중국 조선족 불법체류자인 오원춘(우위안춘.43)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거주했다. 2012년 4월1일 저녁 오씨는 집 앞 전봇대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이때 휴대전화 부품공장에 다니던 곽아무개씨(여‧28)가 걸어오자 그녀를 노렸다. 그는 곽씨가 전봇대 앞을 지날 때쯤 순식간에 자신의 거주지 대문 안으로 밀쳐 끌고 갔다. 오원춘은 곽씨를 집 안에 감금하고 입과 몸을 청테이프로 칭칭 감고 두 차례나 성폭행을 시도했다. 곽씨가 강하게 저항하자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에 화가 난 그는 스패너로 내리쳐 기절시킨 뒤 목졸라 살해했다. 오씨는 곽씨의 시신을 화장실로 옮긴 후 무려 356점으로 훼손했다. 범행수법이나 잔혹성 등을 감안하면 연쇄살인의 가능성이 다분했다. 이리저리 주소지를 옮겨 다닌 주거형태나 .. 2022. 6. 23.
'낙지살인사건' 피해자 남친의 수상한 3중생활 2010년 4월19일 인천의 한 모텔에서 윤혜원씨(여・22)가 산낙지를 먹다 사망한다. 처음에는 사고사로 알았던 부모는 딸의 시신을 화장해 인천 앞바다에 뿌렸다. 그런데 49재를 앞두고 집으로 배달된 ‘보험 증서’를 보고 의문을 품게 된다. 혜원씨가 죽은 후 2억원의 보험금이 나왔고, 수령자는 다름 아닌 남자친구인 김씨(32)였기 때문이다. 혜원씨 가족은 재수사를 요청했고,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인 김씨를 살인혐의로 체포한다. 검찰도 같은 의견으로 기소했다. 검찰은 재판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범죄”라며 사형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살인죄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씨가 법(法)망을 빠져나가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김씨는 항소했고, 2심에서 ‘무죄’를 .. 2022. 6. 15.
‘지하철역 투신 사건’ 충격 받은 기관사의 모습 지하철에서 투신사고가 일어나면 기관사는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지난 2012년 한 기관사가 지하철 투신장면을 목격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로 정신불안을 호소하다 선로에 뛰어들었다. 같은 해 다른 기관사도 투신사고를 경험한 뒤 우울증을 겪다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 한 기관사의 사진이 세상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같은해 4월26일 낮 12시41분쯤 서울 지하철 1호선 오류동역에 진입하는 열차를 향해 30대 여성이 선로로 뛰어들었다. 이로 인해 열차 운행이 10분간 지연돼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투신 여성은 열차에 치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해당 열차의 기관사는 경찰에서 “플랫폼에서 사람이 뛰어드는 것을 보고 급제동했지만,.. 2022. 6. 13.
가슴에 새겨야 할 '독립운동가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 일제와 싸운 독립운동가들. 이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까지 헌신했고, 죽으면서까지 나라를 걱정했다.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있는 것이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우리의 영웅들, 그들이 남긴 마지막 한 마디. 우리의 가슴 속에 깊이 새기자. 백야 김좌진 장군 1889. 12. 16~1930. 1. 24 1920년 10월 청산리계곡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대승을 이끈 독립군 사령관. "할 일이... 할 일이 너무도 많은 이때에 내가 죽어야 하다니... 그게 한스러워서..." 유관순 열사 1902. 3. 15~1920. 9. 28 일제강점기 아우내 3·1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일제에 체포돼 잔혹한 고문으로 18세의 나이에 순국했다.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다.. 2022. 6. 4.
죽은 아기 안고 20일간 거리에서 노숙한 엄마 경기도 안양에는 정신지체 2급인 박아무개씨(여‧32)가 동거남 오아무개씨(32)와 함께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몇 년 전 친구 소개로 만나 동거해왔다. 2010년 5월 두 사람은 부산으로 내려가 고시텔과 여관을 전전했다. 다음해 1월 중순쯤 임신 중이었던 박씨는 부전동의 한 여관에서 7개월 만에 미숙아를 낳았다. 병원에 갈 형편이 안 돼 남편이 손수 아기의 탯줄을 잘랐다. 오씨는 빈 커피캔을 반으로 잘라 예리하게 만든 후 탯줄을 자르는데 사용했다. 병원 한 번 데려가지 못한 아기는 영양실조까지 겹쳐 엄마 젖도 제대로 빨지 못했고, 결국 태어난 지 한 달 만인 2월17일 숨을 거두고 말았다. 부부는 지난 수년간 남편이 건설현장 일용근로자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왔으나 이 일자리까지 잃으면서 막다른 .. 2022. 5. 13.
서진룸살롱 살인사건 '사형수 고금석'의 옥중 순애보 고금석은 전남 신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낙도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모님께 문안 인사를 할 정도로 예절 바른 아이였다. 동네에서도 ‘착한 아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술 취해서 길바닥에 쓰러져서 있는 어른들을 일일이 업어서 집에 모셔다 줄 정도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용인에 있는 유도대학에 입학했다. 서울에서 자취를 했는데, 고향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친구가 가담했던 폭력조직(서울 목포파)에 들어갔다. 6개월 후인 1986년 8월14일 고금석은 ‘서진 룸살롱 살인사건’에 휘말린다. 그가 속한 서울 목포파가 상대 조직인 맘보파의 조직원 4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서울 목포파 13명 중 2명이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그중 한 명이 고금석이다. 고씨는.. 2022. 5. 5.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의 '마지막 여자' 1999년 6월25일 새벽, 신창원은 충남 논산의 한 단란주점에 들어갔다. 혼자 술을 마시러 온 신창원을 김명자씨(가명‧26)가 접대한다. 김씨의 연락처를 받은 신창원은 다음날 오전 전화해 “점심을 같이 하자”고 말했다. 김씨가 나오자 신씨는 "내가 탈옥수 신창원"이라며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김씨가 "어떻게 믿느냐"고 하자 현금이 가득 들어있는 여행가방을 보여줬다. 신창원은 김씨에게 "함께 살자"고 제안했고, 주저하자 "술집에 빚이 있느냐"고 물었다. 김씨가 "빚이 없다"고 하자 이번에는 “소원이 무엇이냐”고 재차 물었다. 김씨가 “고향 순천에서 살고 싶다”고 했고, 신창원이 흔쾌히 받아들인다. 6월27일 밤 두 사람은 신창원의 충남 번호판인 쏘나타 승용차를 타고 국도를 거쳐 순천에 잠입한다. 시내 여.. 2022. 4. 28.
탈주범 신창원과 그를 사랑했던 ‘13명의 여자들’ 신창원은 부산교도소를 탈옥한 후 전국을 오가며 신출귀몰한 탈주극을 벌였다. 무려 907일 동안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다니며 국내 최장기 탈주기록을 세웠다. 그가 오랫동안 숨어지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돈’과 '여자들'이 있었다. 신창원은 도피기간 동안 약 10억을 훔쳤고, 다방 종업원, 주유소 종업원, 카페 종업원, 주점 종업원 등 최소 12명의 여자들과 밀회를 즐겼다. 이중 7명은 길게는 8개월에서 짧게는 일주일간 동거했고, 나머지는 신창원의 정체를 모른 체 손님으로 만났다. 일부는 신창원의 정체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았다. 신창원이 돈도 많았지만 매우 신사적으로 대했고, "너를 사랑한다" "결혼하자" "내 애를 낳아달라"고 해 여자들의 모성본능을 자극했다. 거친 세파에 시달려온 여성들은 신씨의 달콤한 .. 2022. 4. 27.
신창원 추적하던 형사 '신창원 동거녀' 성폭행 사건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신창원은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범죄인생을 살았다. 1989년 3월 공범들과 서울 성북구 돈암동의 한 가정집에 침입해 강도를 벌이다 공범 중 한 명이 집주인을 살해한다. 재판에서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부산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신창원은 1997년 1월20일 감방 화장실 환풍구 쇠창살을 절단하고 탈옥했다. 이후 전국을 오가며 약 9억 8천여만원을 훔쳤고, 유흥업소와 다방 여종업원들을 유혹해 동거했다. 1999년 7월16일, 신창원은 전남 순천의 동거녀 아파트에서 가스레인지 수리공의 제보를 받은 경찰에 검거된다. 이로써 2년6개월(907일)간의 탈옥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신창원은 도주기간 동안 일기를 썼는데,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경찰의 검거.. 2022. 4. 26.
삼풍백화점 붕괴 때 살아남은 '기적의 생존자' 삼풍백화점은 당시 국내 최고가 아파트중 하나인 삼풍아파트단지내에 자리잡았다. 연매출액은 92년 937억원, 93년 1천188억원, 94년 1천646억원으로 전국 백화점 랭킹 7위에 올랐다. 단일 매장규모로는 서울 롯데 본점에 이어 전국 2위였다. 백화점 건물은 같은 크기의 2개동으로 나뉘어져 북쪽 A동은 매장으로 남쪽 B동은 매장(1~3층)과 함께 레포츠 시설(4~5층)을 만들어 놓았다. 두 건물은 가운데에 개선문 모양의 유리 외벽을 세워 연결했다. 백화점 내에는 556개의 점포(직영 438, 임대 118)가 있었으며, 평소 직영 종업원 700여명과 입주업체 판촉사원 300여명 등 1천여 명이 근무해왔다. 1995년 6월29일 오후 6시쯤, A동 건물 5층이 양쪽 벽만 남긴 채 완전히 붕괴됐다. 이 사고.. 2022. 4. 26.
그들은 왜 가족을 죽였나 '친족살인 사건' 자신의 부모나 자녀를 죽이는 것을 법률 용어로 ‘친족살해’라고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친족살해’가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법률적으로 자신의 부모와 조부는 ‘존속’, 자녀들은 ‘비속’으로 분류한다. 자기의 배우자가 자기와 같은 항렬에 있는 형제자매 등은 존속도 비속도 아니다. 다수 언론들은 ‘존속’과 ‘비속’을 살해한 경우를 ‘존속살해’라고 명명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틀린 해석이다. 요즘에는 ‘가족’의 범위가 다양화하고 있어 존속과 비속 그리고 형제 또는 자매를 통틀어 ‘친족’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조사에 따르면 부모가 자식을 죽인 비속살해의 경우 범행 원인은 가정불화, 경제문제, 정신질환 순으로 많았다. 자식을 죽인 부모들의 연령은 30~40대가 80%를 차지했다. 피해 .. 2022. 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