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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11

낙지가 살인범이라고 선고한 판사 2010년 4월19일 인천의 한 모텔에서 A씨(여・22)가 산낙지를 먹다 사망한다. 처음에는 사고사로 알았던 부모는 딸의 시신을 화장해 인천 앞바다에 뿌렸다. 그런데 49재를 앞두고 집으로 배달된 ‘보험 증서’를 보고 의문을 품게 된다. A씨가 죽은 후 2억원의 보험금이 나왔고, 수령자는 다름 아닌 남자친구인 B씨(32)였다. A씨 유족은 재수사를 요청했고, 경찰은 B씨를 살인혐의로 체포한다. 검찰도 같은 의견으로 기소했다. 검찰은 재판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범죄”라며 사형을 구형한다. 1심 재판부는 살인죄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B씨가 법(法)망을 빠져나가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B씨는 여기에 불복해 항소했고,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면서 지옥과 천당.. 2022. 6. 16.
가난한 여대생과 연극배우 윤석화 2010년 4월초 한 여대생이 시사저널 편집국으로 나를 찾아왔다. 당시 시사저널 지면에는 세상 속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People' 면이 있었다. 그는 이 지면을 보고 찾아왔다고 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다시 부활했으면 하는 지면 중 하나다. 나는 회의실로 그를 안내한 후 커피 한 잔을 대접하며 "어떻게 찾아오셨냐"고 물었다. 그는 순박한 모습의 절박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김미지씨(당시 24세)였다. 전년도에 건국대를 졸업한 김씨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스위스 연방공과대학(ETH)의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이곳은 아인슈타인을 배출한 세계 최고 수준의 공과대학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인슈타인 뿐 아니라 21명의 노벨상 수상자 등 당대 최.. 2022. 6. 12.
한 여고생의 시신 2008년 7월1일 인천 강화도에서 실종됐던 모녀의 시신이 14일 만에 발견된다. 나는 다음날 오전 사진기자와 함께 취재차량을 타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날따라 가랑비가 내리면서 을씨년스러웠다. 모녀의 시신이 발견된 강화도 창후리 바닷가 해안 둑 아래 수로는 도로에서 1km쯤 들어가야 하는 외진 곳이었다. 승용차 1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비좁았다. 어른 키보다 큰 갈대밭이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하자 경찰 병력이 동원돼 제방을 샅샅이 수색하는 중이었다. 나는 둑 위에 서서 이 모습을 지켜보다 사진 기자를 먼저 밀어넣었다. 그가 "선배, 냄새 안 나세요?"라고 묻기에 코로 힘껏 숨을 들이켰다. 그랬더니 시신 썩은 냄새가 콧구멍을 타고 온 몸으로 들어오는 듯 했다. 아직도 그 냄새가 잊혀지지 .. 2022. 6. 11.
경찰대 수석입학생의 억울한 죽음 2008년 4월 나는 한 종합대 의대 교수가 마취제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걸 취재하다 경찰대 2학년생 A씨가 마취 후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가 사망한 사건을 접했다. 당시 A씨의 형 B씨는 "동생이 의료사고를 당했다"며 인터넷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B씨에게 전화해 "동생의 구체적인 사망원인이 무엇이냐"고 물었으나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그걸 알지 못해 답답하다"고 했다. 죽음의 원인을 모른다는 말에 조금 의아했다. 나는 다시 "의료기록 등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며칠 후 B씨가 자료를 정리해 시사저널 편집국으로 찾아왔다. 이렇게 나는 A씨의 기막힌 죽음과 마주하게 된다. A씨는 충남 예산의 가난한 집에서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공주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전교.. 2022. 2. 11.
가짜 문화재 놓고 관람료 받은 사찰 국립공원내의 많은 사찰들이 이른바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고 있다. 현행 문화재관리법에 의해 해당 사찰이 국보나 보물 등의 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공개시 관람료 명목으로 돈을 받을 수가 있다. 문제는 문화재 관람 목적이 아닌 일반 등산객 등에게도 관람료를 징수하면서 마찰이 생기고 있다. 2008년 5월 어느 날 경기도의 한 사찰에서 가짜 문화재를 전시해놓고 문화재 관람료를 받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나는 사진 기자를 동반해 취재차량을 타고 해당지역으로 갔다. 우선 제보자를 만나 자세한 내용을 확인했다. 해당 국립공원 관광지의 95%는 사찰 땅이었다. 이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른 기준으로 2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있었다. 사찰이 보유하고 있는 지정문화재(보물)를 공개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2022. 2. 5.
일본 극우학자의 숨겨진 비밀 2012년 9월 어느 날, 사정기관에 있는 한 선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정 기자, 그거 아느냐"며 "일본 극우학자 시모조 마사오(당시 61세)가 극비리에 한국을 다녀갔다"고 전했다. 시모조는 일본의 각종 교과서에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고 표기하도록 물밑 작업을 한 대표적인 극우학자다. 2005년 일본 시마네 현이 설치한 ‘다케시마문제연구회’의 좌장도 맡고 있었다. 2011년도 일본 자민당 의원 세 명의 울릉도 방문을 기획한 것도 시모조였다. 그는 일본 우익을 대변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우리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당시는 일본이 독도를 이슈화해 우리를 자극하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나는 선배에게 "왔다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그랬더니 선배는 "아니, 그놈이 .. 2022. 2. 4.
장애인 형제의 쓸쓸한 죽음 2012년 2월2일 오후 7시10분쯤, 서울 송파구 오금동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장애인이었던 A씨 형제가 동반 투신해 사망한다. 형은 46세, 동생은 45세였다. 이날은 영하 17℃를 오르내릴 정도로 몹시 추운 날씨였다. 나는 사건 발생 5일 후인 2월7일 인턴 기자와 함께 현장으로 찾아갔다. 아파트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평온했고,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고요했다. 형제가 살던 아파트는 서민형 임대주택이었다. 주민의 70%는 65세 이상의 노인이거나 장애인들이었다. 형제는 이 아파트 13층에 있는 13평짜리 집에서 보증금 841만원에 월세 8만7000원을 내고 살았다. A씨 형제는 13층 복도 끝 비상구에서 몸을 던졌다. 이때 '쿵'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목격자도 없었다. 한참 후.. 2022. 2. 3.
엉뚱하게 걸려든 그 여자의 위조학력 2007년 8월 유명인들의 학력위조 문제가 연쇄적으로 불거졌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를 비롯해 인기 영어강사, 유명 만화가, 디자이너 등. 시사저널도 유명인의 학력 검증에 나섰다. 나는 대학생 인턴기자 한 명을 붙여달라고 했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재학생인 장아무개 인턴 기자(여)가 나와 한팀이 됐다. 나는 장 기자에게 "자, 지금부터 학력을 속일 만한 유명인들의 명단을 뽑아보자"며 팔을 걷어 붙였다. 그러면서 몇 가지 선별기준을 제시했다. 국회의원 등 유명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 등은 우선 순위에서 배제했다. 이들은 이미 여러 검증대에 올려졌기 때문에 새롭게 학력위조가 들어날 가능성이 적었다. 우리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유명인에 초첨을 맞추었다. 한참 대상을 간추리고 있는데 장 기자가 나한테 오더니.. 2022. 2. 2.
국정원과 호주 성매매 조직 2007년 3월부터 5월까지 MBC에서 고현정 주연의 범죄드라마 가 방송됐다. 실제 주인공은 여성 조폭팀장으로 유명한 A경위였다. 나는 A경위와 친분이 있어서 가끔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 받던 사이였다. 그러던 2011년 어느 날 A경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전직 고위직 공무원의 아들 B씨가 호주에서 한국인들을 돕고 있는데, 교민들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이메일 하나 보낼테니 살펴봐 달라"고 했다. B씨가 A경위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며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이었다. 내용을 보니 한국의 성매매 조직이 호주에 원정가서 악명을 떨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워킹 홀리데이로 들어간 유학생까지 끌어들이고, 중국 갱들과의 암투 등 교민사회가 이들로 인해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조직의 총책(두목).. 2022. 1. 28.
방송사 기자 성폭행 피해자의 전화 어느 날 저녁 한 취재원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잔을 몇 번 부딪치고 나자 그가 "정기자님, 그거 아십니까?"라고 묻는다. 나는 "뭔데요"라고 반문했다. 그에 따르면 지상파의 A기자가 언론 연수를 갔다가 그곳 여직원을 성폭행했다는 내용이다. 다음날부터 곧바로 취재에 들어갔다. 우선 A기자의 신상부터 자세히 파악했다. 해당 언론기관의 기자 연수가 있었는지도 확인했다. 그런 다음 그의 휴대전화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말을 돌려가며 떠보다가 어느 순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는 내가 언론계 선배라는 것을 알고는 깍뜻하게 '선배'라는 호칭을 썼다. 나는 오늘은 선배로서 묻겠다며 해당 사건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는 경계하는 말투로 바뀌더니 부인도 인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기사를 쓰지 말아달.. 2022. 1. 28.
김포 고촌수로에서 발견한 00권총 나는 한때 낚시를 자주 다녔다. 어느 화창한 주말을 맞아 낚싯대를 메고 김포 고촌수로에 갔다. 이날은 참게를 잡으려고 시장에서 꽁치를 사고, 참게망을 준비했다. 룰루랄라~ 고촌수로의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낚싯대를 물속에 드리우고 넣다 빼기를 반복하다가 바로 앞 바닥을 보니 커다란 말조개가 눈에 띄었다. 그걸 잡았더니 그 아래에 이상한 물체가 보였다. 꺼내서 들어보니 권총이었다. 묵직한 것이 진짜 권총같았다. 일단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낚시에 열중했다. 그날 따라 게가 입질도 많았고 잡기도 많이 잡았다. 게 잡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가 해가 졌고, 재빨리 낚싯대를 챙겨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서 생각해보니 아차!하고 '권총'이 떠올랐다. 다음날 월요일 점심 때 공덕에서 사정기관 직원과 시사저.. 2022. 1. 28.